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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카데미상 14개 부문 후보에 오른 이브의 모든것 베티 데이비스

by 츠키아카리 2022. 12. 15.

본명은 루스 엘리자베 데이비스이며 전형적인 미인이 아니었음에도 그 당시 가장 성공한 배우가 되면서 할리우드의 전통을 깼던 배우예요. 미국의 전설적인 배우이자, 고전 할리우드 황금기를 대표하는 스타인 그녀는 1908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로웰에서 태어났는데요, 1915년 부모님의 이혼 후 어머니 밑에서 자라다가 미국의 기숙형 사립학교 쿠싱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1926년 배우를 지망하여 대학교 연극과에 입학했어요. 그녀는 연극학교를 거쳐 무대에 섰는데 1929년에 Broken Dishes <깨진 접시>로 처음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랐다고 해요. 다음 해에는 그의 첫 소속사인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너무 평범하다고 까였을 정도였는데 이후의 명성에 비하면 정말 초라한 첫해였던 거죠. 1930년 할리우드로 이주했으며 1931년 <배드 시스터>라는 영화로 데뷔했어요. 1932년 유니버설과의 재계약 실패 후 뉴욕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그녀를 눈여겨본 워너 브라더스사와 5년간 계약을 맺고 계약 이후 작은 배역을 전전하게 되었어요. 30년대 내내 워너브라더스에서 건방지고 예쁘고 유행에 민감한 도시 아가씨 역할로 활동을 이어나갔으며 2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다가 RKO의 1934년작 <인간의 굴레에서>에 출연하게 돼요. 당시 악역은 캐릭터에 배우가 묻히는 경우가 많아 악역을 꺼려하는 경향이 있었으나, 베티 데이비스는 악역에서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악역에 도전하게 되어 레슬리 하워드의 상대역을 맡으며 처음엔 주변에서 풋내기 듣보잡이라고 무시했으나 뛰어난 연기력으로 바로 인정받았으며, 영화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며 스타덤에 올랐어요. 거친 웨이트리스 밀드레드 로저스를 연기한 베티 데이비스는 <인간의 굴레에서>라는 영화로 비평가들과 관객들의 찬사를 받았기에 다음 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이 유력시되었으나, 막상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는 오르지 못했어요. 그래서 후보자 추가 기명 캠페인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실패로 끝나버렸죠.

1935년 오스카의 밤에서 제외되어서 이듬해 Dangerous <댄저러스>에서 알코올 중독 여배우를 연기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할 수 있었는지도 몰라요. 그녀는 3년 후 1938년 Jezebel <제저벨>에서 버릇없는 남부 미인을 연기해 2번째 오스카상을 거머쥐었어요. Jezebel <제저벨>은 윌리엄 와일러와 처음 작업을 함께 하면서 윌리엄 와일러의 초기 페르소나로 활동했는데요. 베티 데이비스가 미국의 소설가 마거릿 미첼이 쓴 유일한 장편소설이자 대표작인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 역에서 탈락하고, 소속사인 워너에게서 일종의 보상으로 받은 게 Jezebel <제저벨>이었어요.

Jezebel <제저벨>을 기점으로 베티 데이비스의 전성기가 시작되었는데요. 1939년부터 1943년까지 5년 연속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라갔어요. 

 

데이비스의 역할 중에 가장 오랫동안 기억되는 것은 조셉 맨키 위즈 감독의 All About Eve <이브의 모든 것>에서 연기한 마고 채닝 스였어요. 비평가 로저 이버트는 그녀가 연기한 가장 대단한 역할이 채닝 스라고 썼다고 해요. "이 영화는 그녀가 젊은 여배우의 농간에 당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녀가 이긴 것이다. 즉, 아름다움이 가진 표면적인 힘을 누른 인성과 의지의 승리다. 그녀가 이보다 더 자전적인 역할을 연기한 적은 없었다."

<이브의 모든 것>은 아카데미상 14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으며 6개의 아카데미상을 수상했고, 총 11차례 후보에 올랐던 데이비스가 9번째로 아카데미 후보에 오른 작품이었어요. 이는 <인간의 굴레에서> 했던 역할로 흔치 않은 후보자 기명 캠페인이 벌어진 것까지 합친 수치라고 해요. 

 

베티 데이비스는 워너 브라더스의 간판스타였고 아카데미사 최대 연속 후보 지명 기록 공동보유자이며, 무려 11번이나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에 지명되었던 연기파 배우예요. 그녀가 마지막으로 아카데미 후보에 올랐던 역할은 1962년 심리스릴러 <제인의 말로>에서 맡은, 라이벌이자 스크린의 전설 조앤 크로퍼드의 상대였이었어요. 영화 속에서도, 현실에서도 담배를 좋아라 하는 골초이기도 했으며 흡연으로 인한 피해로 1983년 유방암 수술을 받은 뒤에도 영화, TV시리즈에 출연하는 열정을 보였지만 결국 유방암으로 인한 합병증 때문에 1989년 마지막 영화 <사악한 계모>를 찍고 1989년 10월 06일에 숨을 거두었죠. 

 

1999년 미국 영화 연구소(AFI)는 베티를 현시대의 가장 위대한 여성 스타 25위 중 2위로 선정하였으며, 미국 영화와 연극의 총본산적 존재라 칭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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