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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터프가이 클라크 게이블의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by 츠키아카리 2022. 12. 14.

1901년 미국 오하이오 주의 카디즈에서 석유 시추 노동자와 광부 사이에서 태어난 클라크 게이블의 부모님은 모두 독일계 미국 이민자의 후손이에요. 아버지는 개신교, 어머니는 가톨릭 신자였는데 어머니는 클라크 게이블이 생후 6개월일 때 가톨릭식 세례를 해주었고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를 못마땅하게 여겼다고 해요. 어머니는 게이블이 생후 7개월일 때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는 어머니가 죽은 지 1년 4개월 후에 옆 마을에서 온 제니 던랩과 재혼했으며, 계모 밑에서 구박받으며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게 돼요. 

 

게이블은 에딘버런 고등학교 야간반 재학 중 밴드부에 들어갔고, 거기서 나팔을 불었다고 해요. 1917년 극장에서 우연히 관람한 한 편의 연극에 감동한 뒤 연극과 무성영화의 단역배우로 출연하죠. 

 

게이블의 배우활동은 12편의 영화에 출연했던 1931년부터 빛을 보기 시작해요. 1931년 The finger Points <파이터 포인트>, 1931년 Night Nurse <야간근무 간호원> 등에서 갱역을 소화해냈는데 이때의 이미지가 인상 깊게 대중들을 사로잡았어요. 

 

1931년부터 1954년까지 MGM사와 계약을 맺으며 점차 쾌활하고 모험을 즐기는 중년 남성 역할을 주로 맡아 유명해졌어요. 1930년대에 헐리우드의 미남 배우이자 이상적임 니국 남성상으로까지 호평을 얻었으니까요. 1932년 Red Dust <붉은 먼지>에서 진 할로의 상대역을 맡으면서 슈퍼스타 반열을 향한 궤도에 올라탔죠. 이후 1934년 프랭크 카프라 감독의 It Happened One Night <어느 날 밤에 생긴 일>에 주연으로 캐스팅되었는데 영화의 성공과 동시에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어요. 이 영화는 게이블이 겉보기에는 거칠어 보이면서도 다정하고 감성적인 내면을 가지고 있는 인물을 연기할 수 있는 능력을 입증해 보인 중요한 로맨틱 코미디였어요. 그는 1934년 Mutiny on the Bounty <바운티호의 반란>에서 폭도들의 리더인 플레처 크리스천을 연기하면서 다시 한번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어요. 이무렵 게이블은 할리우드 왕으로서 입지를 다졌지만, 가장 위대한 배역은 아직 연기하기 전이었죠.

 

1939년 마가렛 미첼의 동명 소설을 기반으로 한, 미국 서사극의 정수로 널리 꼽히는 Gone with the Wind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게이블은 레트 버틀러라는 멋지고 오래 기억될 역할을 연기했어요.이 영화는 할리우드의 역사를 대표하는 기념비적인 영화 중 하나이며, 인플레이션 적용 기중 영화 역사상 최고의 흥행작이기도 하죠. 클라크 게이블에게는 이 영화를 기점으로 계속해서 주연을 맡을 수 있게 해 준 작품이었어요.  

Gone with the Wind<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 흑인 사상 처음으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해티 맥대니얼이 당시 흑인이라고 하여 시상식에 못 나오게 되자 강력하게 결사반대하여 만약 그녀가 나오지 못한다면 나도 시상식을 보이콧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아 그녀가 무사히 시삭식에 나오게 한 바 있다고 해요. 

 

1939년 12월 14일 개봉한 Gone with the Wind<바람과Wind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빅터 플레밍 감독, 버틀러 역은 클라크 게이블, 스칼렛 역은 비비안 리였어요.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한 여주인공 스칼렛의 인생 역정을 다룬 영화인데요. 제작사인 셀즈닉 인터내셔널 픽처스는 Gone with the Wind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역대급 대작으로 만들기 위해 모든 것을 총동원했다고 해요. 처음부터 세세한 부분까지 모두 화려하게 만들기로 마음먹은 셀즈닉은 빅터 플레밍, 샘 우드, 조지 큐커에게 영화를 맡겼다고 해요. 이 영화가 영화사의 기념비적인 작품인 이유는 바로 당대에 할리우드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활용해 역대 최고 수준의 엔터테인먼트를 완성했다는 것이라고 해요. 또, 이 영화는 원작을 최대한 충실하게 영화화 한 작품으로 비평가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고 캐스팅과 연기에 대한 평가 또한 높았다고 해요. 영화의 무대 조지아주 애틀랜타는 이 날을 휴일로 지정했으며, 영화는 그 해 아카데미 8개 부문을 휩쓰며 1년 만에 2500만 명이라는 관객을 동원했죠.

 

아카데미에서 이 영화와 대결한 영화는 프랭크 카프라가 연출, 제작한 Mr. Smith Goes to Washington<스미스씨 워싱턴에 가다>였는데, 아카데미 11개 부문에 후보로 올라 대결하다가 모두 패배하고 오리지널 각본상 하나에 만족해야 했다고 해요. 원작이 있는 Gone with the Wind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이 상을 탈 수 없었기에 겨우 수상한 것이라고 해요. 사실 이 영화도 루이스 포스터가 쓴 The Gentleman from Montana <몬태나에서 온 신사>라는 원작 소설이 있긴 했지만 소설이 나오기도 전에 컬럼비아가 판권을 사서 영화로 제작했고 각본 역시 작가가 직접 영화로 각색하여 오리지널 각본으로 해석해 후보에 오른 거라고 해요.

 

1942년에 게이블의 아내이자 영화배우인 캐롤 롬바드가 비행기 충돌로 사망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미 공군에 징집되어 2차 대전에서 전투기를 조종하는 임무를 수행했다고 해요. 그는 2차 대전 종전 후 다시 브라운관과 브로드웨이에 출연한 뒤 영화로 복귀했지만 어느 것도 예전 같은 성공을 가져다주지 못했다고 해요.

존 휴스턴이 연출하고 아서 밀라가 각본을 쓴 그의 마지막 영화 The Misfits<기인들>은 함께 출연한 메릴린 먼로의 마지막 영화이기도 하다. 게이블은 완성된 영화를 보지 못한 채 59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사망했어요.

 

스크린 속 남성미 넘치는 터프가이의 모습으로 유명한 클라크 게이블 주연의 <어느날 밤에 생긴 일>, <바운티 호의 반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모두 아카데미 작품을 수상하였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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