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 아일랜드 이민자 부부의 6남매 중 막내로 포틀랜드에서 출생했으며, 그의 본명은 John Mertin Feeney (존 마틴 피니)이지만 그는 견진성사 때 선택한 Sean Aloysius O'Feeney (숀 알로이셔스 오피니)를 본명으로 쓰길 좋아했다고 해요. 술집과 농장 일을 했던 포드의 집안은 중산층과 중하층을 오르내렸으며 포드는 학창 시절에도 배달부, 농장일 보조, 식당 종업원 등의 일을 멈추지 않았다고 해요. 고등학생 시절엔 독서광이면서 미술과 어학에 재능이 있었지만, 수학은 낙제였던 포드는 해군사관학교 입학시험에 떨어졌고, 메인 대학교에 들어가 공부했지만 몇 주 만에 그만두고 1914년 서부극 스타였던 형 F. 포드의 도움으로 영화계에 들어가 소도구부터 출발해 배우. 조감독을 거쳐 감독이 되어 해리 켈리 주연의 서부극을 만들게 되었는데요. 1917년 잭 포드라는 이름으로 첫 장편 <스트레이트 슈팅>을 연출하게 돼요. 1921년 폭스사로 이전했고, 1923년부터 존 포드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으며, 미대륙 최초의 횡단철도건설을 그린 대작 The lron Horse <아이언 호스>1924에서 인정받았으며, 아일랜드 독립운동의 배신자를 그린 The Informer <밀고자>1935는 20년간 무성영화와 유성영화를 제작한 후 포드 감독은 빅터 맥라글렌이 출연시킨 영화로 첫 아카데미상 감독상을 수상했어요. The Informer <밀고자>1935에 출연한 빅터 맥라글렌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죠. 포드의 첫 번째 유성 서부영화는 Stagecoach <역마차>1939인데요. 서부영화 장르가 다시 활기를 찾는데 도움을 줬으며 존 웨인이 배우로서 경력을 쌓기 시작한 영화였죠. 문명화와 야생 개척지 사이의 갈등을 탐구하는 이 영화는 이전의 서부영화들보다 좀 더 철학적인 주제와 다채로운 등장인물을 수반했으며 액션 신에 솜씨를 보였죠. Stagecoach <역마차>는 크게 흥행했고, 웨인과 포드는 그 후로 10여 편의 영화에서 함께 작업했어요.
또, 1939년은 포드가 헨리 폰다와 협업하기 시작한 해이기도 한데요. 2년의 기간 동안 감독과 배우는 3개의 영화를 만들었는데 그중 하나였던 The Grapes of Wrath <분노의 포도>1940은 포드에게 2번째 아카데미 감독상을 안겨주었고 수년 동안 역대 가장 위대한 미국 영화로 꼽혀요. 그리고 난 후 Tobacco Road <터 배코 로드>1941와 같은 문제작을 낸 후 How Green was My Valley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1941로 세 번째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았어요. 그리고 난 후 포드와 폰다는 획기적인 서부영화 My Darling Clementine <황야의 결투>1946도 작업했죠.
포드는 Fort Apache <아파치 요새>1948, She Wore a Yellow Ribbon <황색 리본>1949, Rio Grande <리오 그란데>1950 등 고난 시리즈에서 웨인의 스크린 이미지를 더욱더 빛나게 했어요. 그러나 이들이 가장 오래 기억될 영화는 포드가 미국 서부 대신 식물이 무성한 아일랜드 시골을 배경으로 삼은 <말 없는 사나이>와 그의 가장 영향력 있는 영화 The Searchers <수색자>1956이라고 할 수 있어요.
The Quiet Man <말 없는 사나이>1952로 네 번째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았고, 영화 The Searchers <수색자>1956은 서부극 최고의 걸작이라 불리며, 역대 최고의 영화를 꼽을 때 반드시 언급되는 영화 중에 하나예요. 웨인이 영웅적 자질이 없는 주인공 에단 에드워즈 역으로 등장하고 집착, 인종차별, 도덕적 모호성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에요. 이 역할은 웨인이 가장 좋아하는 역으로도 꼽히는데 할리우드가 미국에서 백인의 서부 확장과 아메리칸 원주민들에게 미치는 파괴적인 영향을 인정하도록 도운 역할이었어요.
존 포드는 역대 가장 큰 찬사를 받은 서부영화들을 연출했으며, <역마차>, <분노의 포도>, <수색자> 같은 영향력 있는 작품을 탄생시킨 단순하고 고전적인 영화 제작 방식으로 유명한 미국의 영화감독이에요. 20세기 전반 미국 영화를 대표하는 감독이자, 서부극이라는 장르에 큰 족적을 남겼기에 "서부극의 거장"이라는 평가를 주로 받지만, 실질적으로는 여러 장르에 걸쳐 영화의 기틀을 잡고, 영화 역사의 중심적인 인물 중에 한 명이라고 할 수 있죠.
또, 4번의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하면서 유례없는 기록을 세웠고 존 웨인과 헨리 폰다가 대스타로 성장하는 데 도움을 주었어요. 그는 마틴 스코세이지, 조지 루카스, 장뤼크 고다드, 구로사와 아카리 감독 같은 후 세대 감독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기도 했죠.
1973년 AFI 평생 공로상 수상식에 참여한 리처드 닉슨 대통령으로부터 미국 대통령 자유 훈장과 명예 대장 진급이라는 선물을 받았고, 1973년 79세의 나이로 별세했어요. 그는 1917년 무성영화 시절부터 연출을 시작해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140편의 영화를 만들었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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