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포이티어 또한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데요, 배우, 감독, 각본가이자 외교관으로 활동했다고해요, 슬하에 6녀가 있으며 189cm의 큰 키를 가지고 있는 영화배우였죠.
시드니 포이티어만큼 할리우드에서 흑인배우가 받아들여지는 데 큰 영향을 미친 배우는 없다고 해요. 정면으로 인종차별 문제를 제기한 몇몇 영화에 출연함으로써 포이티어는 아프리칸-아메리칸에서 더 나아가 성공한 할리우드 스타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죠. 그는 경쟁이 치열한 아카데미상에 후보로 오른 최초의 흑인 남성이자,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최초의 흑인 남자배우에요.
1927년 2월 20일 미국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에서 태어난 시드니 포이티어는 바하마에 있는 부모의 집을 떠나 마이애미를 향해 출발한 배 안에서 태어났다고 해요. 바하마에서 자라 10대 때 미국으로 건너 갔어요. 그는 연극배우로 활동하다가 <노웨이 아웃>을 통해 처음으로 영화 관련 일을 하게 되었죠.
그는 <폭력교실>에서 문제 많은 고등학생을 연기하면서 처음으로 주목을 받게 되었고 <흑과 백>으로 최초의 의미 있는 찬사를 받았어요. 이 영화에서 그는 토니 커티스에게 족쇄가 채워진 채 도망치는 범죄자를 연기했는데, 두 사람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서로를 인정하는 법을 배워야만 했어요. 1964년 오스카상을 수상한 <들백합>에서는 동독 수녀들과 친분을 쌓아 성당 건축을 돕는 실직 중인 건설노동자 호머스미스를 연기했어요.
포이티어의 가장 성공적인 해는 <언제나 마음은 태양>, <밤의 열기 속에서>, <초대받지 않은 손님>에 출연했던 1967년이에요. 대부분의 비평가들은 <밤의 열기 속에서>,를 포이티어 최고의 작품으로 꼽고 있어요. 이 영화에서 존볼이 쓴 소설 "밤의 열기 속으로"가 원작으로, 그는 작은 미시시피 마을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필라델피아 강력계 형사인 비질 티브스를 연기했고, 티브스가 경찰서장인 빌 길리스파이와 협력하게 되면서 두사람 모두 인종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들여다보게 되요. 비록 포이티어가 후보로 오르지는 못했지만 이 영화는 작품상, 남우주연상을 비롯해 5개 부문에서 아카데미상을 수상하게 되요. 포이티어는 다른 인종 간의 관계를 탐구하는 <초대받지 않은 손님>에서 할리우드 전설 스펜서 트레이시, 캐서린 햅번과 함께 출연했어요.
포이티어는 1970년대의 대부분은 연기보다는 감독 일에 집중하면서 보냈고, 1977년 이후로는 소수의 작품에만 출연했어요. 2002년 포이티어는 '뛰어난 연기와 스크린 속에서의 고유한 존재감'으로 아카데미 평생공로상을 수상했어요. 시상자는 덴젤 워싱턴이었고,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2009년 민간인 최고 영예인 자유 메달을 걸어주기도 했어요.
2000년대 이후로 연기에서 거의 은퇴한 상태였고, 영연방 왕국인 바하마 출신이며 미국 국적도 획득한 이중국적자이기 때문에 영국 기사 작위와 자유 훈장을 동시에 수상한 사람이기도 하다고 해요. 1997-2007년 주일본 바하마대사, 2002-2007년 주유네스코 바하마 대사를 맡은 이력도 있으며 2022년 1월 6일 향년 9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도 바하마에서 숨을 거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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