콧수염, 지팡이, 우스꽝스러운 옷 하면 누가 떠오르시나요?
츠키아카리는 이 단어들을 조합하면 찰리 채플린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더라구요.
리틀 트램프는 전설적인 배우 찰리 채플린이 연기한 유명한 캐릭터이자
할리우드 무성영화 시대의 불후의 상징인데요.
1910년~ 1920년대 트램프는 영화가 상영되는 나라라면 전 세계 어디서나
사랑받은 해학적인 인물로 지구상에서 가장 공인된 이미지였다고 해요.
찰리 채플린은 런던 뮤직홀의 삼류 배우인 부모에게서
1889년 4월 16일생으로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 영국 무대에서 아역으로 활동했다고 해요.
그는 미국에서 두 번째 순회 공연을 한 후 미국에 남았고
1913년부터 무성영화 배우로 활동을 시작했다고 해요.
그리고 2년 만에 그는 세계적인 스타로 성장했죠.
두번째 영화 <베니스의 어린이 자동차 경주>에서 트램프로 데뷔를 했는데,
이 인물은 콧수염, 중산모자, 배기팬츠, 큰 신발, 지팡이와 뒤뚱거리는
걸음걸이가 특징었어요. 채플린의 숙련된 몸 개그와 감성을 자극하는
제스처는 그를 음성 언어의 제한을 받지 않는 글로벌 스타로 만들었죠.
1914년 채플린은 영화를 직접 연출하기 시작했고 이후에는 배우,감독,
제작, 각본, 음악, 편집에 으르기까지 작품의 거의 모든 면에 관여했다고 해요.
1920년대에 <키드>와<황금광 시대>를 연출한 후 10년 동안 채플린은 고작
두 편의 영화만 완성했지만, 모두 대작이었어요, 최고의 작품으로 자주 꼽히는
<시티 라이트>는 유성영화가 등장하고 3년 후에 개봉됐지만 채플린은 무성영화가
말보다 더 순수한 형태를 표현한다는 믿음을 고수했다고 해요
또 다른 대표작 <모던 타임스>는 산업시대의 기계와 사람의 투쟁 그리고 실업,
빈곤, 굶주림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해요.
아돌프 히틀러의 등장을 풍자한 <위대한 독재자>는 마지막으로 등장한 영화이자
처음으로 대사를 했던 영화라고 해요. <위대한 독재자>는 개봉과 동시에 대성공을
거뒀고 지금도 위대한 영화로 남아있죠. 나이가 들면서 채플린은 점점 활동이 줄었고
1940년 이후에는 5편의 영화만 연출했다고 해요.
유럽으로 여행을 다녀온 1952년에 그는 "바람직하지 않은 외국인"이라는
명목으로 미국으로 재입국이 거부되었다고 해요.
수년 동안 미국 당국이 그의 공산주의 성향을 의심한데다 젊은 여성들과 세간의 이목을
끄는 염문에 휘말리기까지 했기 때문인데요. 그는 88세의 나이로 사망하기 전까지
스위스에서 여생을 보냈다고 하네요.
그의 네 번째이자 마지막 부인 우나는 결혼 당시 18살이었고 채플린은 54살이었다고 해요.
우나는 미국 극작가 유진 오닐의 딸이었는데 우나가 채플린과 결혼한 후 이 부녀는 서로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구요.
영국의 배우이자 코미디언, 영화감독, 음악가를 직업으로 가지고 있었던 찰리 채플린.
그는 배우로서는 멋있었는지 모르지만, 사생활 적인 면에서 지금의 잣대를 놓고 보면
평범한 사람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세 번째 부인 빼곤 첫 번째 부인은 17살, 둘째 부인 역시 15살, 네 번째 18살..
바람직하지 않은 외국인이라는 타이틀을 왜 달았는지 알겠더라구요.
그의 영화 업적은 멋지다고 느껴지지만, 그의 실체는 참 의문이 많이 생기네요.
찰리 채플린의 명언 하나 남기고 갈께요.
Life is a tragedy when seen in close-up, but a comedy in long-shot.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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