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

갱스터 영화의 스타 제임스 카그니

by 츠키아카리 2022. 12. 10.

 

1899년 뉴욕시 맨하튼에에 사는 제임스 카그니 시니어와 캐롤라인 넬슨 카그니 부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제임스 카그니는 1930년대에 등장해 급성장한 갱스터 영화의 전형적인 스타였죠. <뉴욕타임스>에 실린 그의 사망 기사에 쓰인 것처럼 그는 "자만심에 찬 호전적인 영화배우"였고 전설적인 쇼맨이었다고 해요. 윌 로저스는 그에 대해 "그가 일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한 묶음의 폭죽이 한꺼번에 터지는 것과 같았다"고 말했다고 해요.

 

카그니는 14살 때부터 학업과 병행하며 여러 일을 하게 되었는데 그중에 하나가 배우였다고 해요. 1930년 연극 Penny Arcade<페니 아케이드>의 주연을 맡게 되죠. 이연극은 본 Al Johson(앨 존슨)은 워너 브라더스에게 Penny Arcade<페니 아케이드>를 영화화할 것을 제안했고 그렇게 나온 영화 Sinner's Holiday<시너스 홀리데이>라는 영화가 카그니의 데뷔작인 거죠. 그는 브로드웨이와 보드빌에서 훈련을 받았는데 대단한 댄서도 뛰어난 가수도 아니었지만, 무대에서 에너지 넘치는 모습이 스크린에서도 잘 표현되었고 다섯번째로 찍은 영화 The Public Enemy,1931<공공의 적>에 출연했는데, 그는 이 영화로 순식간에 스타가 되었다. 최초의 갱스터 영화 중 하나인 The Public Enemy,1931<공공의 적>은 윌리엄 웰먼의 기념비적인 갱스터 영화로 금주령 시대를 배경으로 한 제임스 카그니(탐 파워스)의 상승과 몰락을 사실 적으로 다룬 작품이에요. 먼저 영화는 개봉 당시 선례 없는 여성혐오에 대한 사실적 묘사와 폭력 묘사로 악명을 떨쳤으며, 제임스 카그니의 순진한 소년의 모습을 간직한 갱스터를 연기해 낸 제임스 카그니 덕에 이 영화가 성공할 수 있었다고 The Public Enemy,1931<공공의 적>윌리엄 웰먼이 말했다고 해요. The Public Enemy,1931<공공의 적>의 가장 유명한 장면은 카그니가 연기한 탐 파워스가 함께 출연한 메이 클라크의 얼굴에 자몽의 절반을 뭉개버리는 것이라고 해요.

 

이후 1930년대에 카그니는 계속해서 할리우드 주요 갱스터 영화에서 명성을 날렸고, 워너 브라더스가 제작한 여러 갱스터를 대표하는 영화 중 하나인  Angels With Dirty Faces,1938<더럽혀진 얼굴의 천사>에 제임스 카그니와 팻 오브라이언이 앙상블을 이뤄 연기한 수 많은 영화들 중 두번째에 해당하는 영화이며 Angels With Dirty Faces,1938<더럽혀진 얼굴의 천사> 를 통해 카그니는 처음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로 지명되었으며, 그 외에도 이 영화는 최우수 감독상(마이클 커티즈), 최우수 각본상(롤랜드 브라운)등에 노미네이트 되었다고 해요.1년 후 그는 다시 한번 보가트와 함께 금주령 시대를 배경으로 한 The Roaring Twenties,1939<포효하는 20대>에 출연했는데 피날레에서 제임스 카그니가 교회 계단에서 숨을 거두는 장면은 제임스 카그니의 숭고한 연기 스타일이 유감없이 발휘된 순간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 영화가 카그니의 1930년대 마지막 갱스터 영화였죠.

카그니는 Yankee Doodle Dandy,1942<성조기의 행진>에서 유명한 가수 겸 송라이터, 댄서인 조지 코한을 연기하기 위해 다시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으로 돌아갔다고 해요. 이 애국적인 뮤지컬 영화는 그해 최고의 박스오피스 흥행작이었고, 카그니에게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안겨주었죠. 그는 라울 월쉬 감독의 프로이트주의 영화 White Heat,1949 <화이트 히트>에 출연하였고, 이 영화는 30년대 갱스터 영화와 전후 필름 느와르의 교차점에 위치하는 범죄영화의 걸작이라 불리며 라월 월시의 대표작일 뿐만 아니라 영화사상 최고의 터프가이로서의 제임스 카그니의 연기를 만나볼 수 있죠. 1955년 카그니는 아카데미상 후보에 선정된 Love Me Or Leave Me,1955<사랑하거나 떠나거나>와 헨리폰다, 잭 레몬이 함께한 Mister Roberts,1955 <미스터 로버츠>에 출연했어요.

카그니는 1961년 은퇴했지만 좀 더 활동하라는 의사들의 지시로 20년 후 스크린으로 돌아와 밀로스 포만 감독의 Regtime,1981<래그타임>에서 단역을 맡았고 이 영화가 카그니의 마지막 영화가 되었죠. 그는 민간인이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영예인 미국 대통령 훈장을 받았어요. 배우로써 이 훈장을 받은 사람은 20명도 안 된다고 해요.

그리고 그의 나이 86세에 1986년 심장마비로 사망하였고, 오랜 친구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그의 장례식에서 추도 연설했죠.

 

165cm라는 작은 체구임에도 클래식 할리우드 시절 배드 가이 이미지로 유명했던 배우이고, 클래식 할리우드 시절 최고의 배우 중 한명으로 우리에게 기억되고 있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