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의 황금기를 상징하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배우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헨리 폰다는 할리우드의 선역의 아이콘이자 할리우드 가족의 상징이기도 했다고 해요. 1905년에 태어난 헨리 제인스 폰다는 185.5cm의 훤칠한 키에 소두인지라 비율이 극도로 좋은데 젊은 시절에는 절친 191cm인 제임스 스튜어트와 큰 차이가 없었어요. 할리우드 배우 피터 폰다의 아버지이자 브리짓 폰다의 할아버지이기도 해요. 그의 아들 피터 폰다는 아버지를 닮아서 선하고 정의로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으며 데뷔작은 데니스 호퍼와 함께 출연한 1969년작이지 라이더로 주인공 캡틴 아메리카 역으로 나와요. 누나랑 함께 아메리칸 뉴웨이브 시네마 시절 유명했던 배우이며 아버지 못지않게 미남이며 키까지 아버지를 닮아 매우 크죠. 브리짓은 아들 피터의 딸이며 가장 알려진 배역으로는 대부 3에서 그레이스 헤밀턴이에요.
헨리 폰다는 느긋한 스타일과 도덕적 딜레마에 직면한 정직하고 예의 바른 캐릭터 연기로 배우 활동을 오래 이어간 배우 중에 하나예요. 비평가 로저 이버트는 그를 "사람들에게 다가가려고 하거나 노력하지 않는 것 같은데도 스크린에 남을 수 있는 보기 드문 능력을 가진 배우"라고 묘사했어요.
브로드웨이 배우로 활동했던 폰다는 1935년 처음 할리우드에서 영화에 출연했고, 존 포드 감독의 영화 <젊은 미스터 링컨>, <모호크족의 북소리>, <분노의 포도>에 출연하면서 스타로 발돋움했어요. 대부분의 영화 역사가들은 존 스타인백의 동명 소설 <분노의 포도>를 영화화한 작품 속에서 연기한 톰 조드를 그의 최고의 역할로 꼽아요. 그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지만 <필라델피아 스토리>에 출연했던 그의 친구 제임스 스튜어트에게 밀렸어요. 린치를 가하는 무리를 기소하며 정의를 보여준 서부영화 <옥스보우 인서던트>에 출연한 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당시 이미 나이가 40이 넘었지만 해군에 자원입대하며 폰다는 미 해군에서 3년간 복무하고, 공중전투정보부의 중위로 제대했어요. 예비역으로 전환되어 1948년까지 예비역 해군 장교직을 유지했죠.
2차 대전 후 그는 <황야의 결투>에서 와이어트 업을 연기하면서 또 하나의 대표적인 역할을 맡았죠. 그러나 2년 후에 그는 할리우드를 떠나 다시 연극배우로 활동하기 시작했어요. 폰다는 토니상을 수상했던 <미스터 로버츠>의 주인공 역할을 영화에서도 그대로 맡았으며 제임스 캐그니와 잭 레몬이 조연으로 출연한 이 영화는 폰다와 존 포드의 마지막 합작품이에요. 그들은 세트장에서 주먹다짐을 했고 포드 감독이 건강상의 이유로 그만두면서 머빈 르로이 감독이 합류해 영화를 마무리했어요. 이런 일화들을 보면 알 수 있듯 영화 내에서는 선하고 차분한 이미지인 반면 실제 설경은 불같았다고 해요. 피터 폰다 말로는 사탕을 몰래 까먹다가 걸려서 엉덩이를 맞았다고 해요. 그러나 원리원칙을 매우 잘 지키는 인물이고 화나지만 않으면 주변인들에게 상당히 친절했다고 해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제작에 참여한 폰다는 시드니 루멧 감독의 <12명의 성난 사람들>에서 논리적이고 예의 바른 8번 배심원을 연기하면서 선한 사람을 연기하는 전문가로서의 이미지를 굳혔어요. 이 영화는 그의 대표작이자 전설적인 걸작으로 이후에도 두고두고 회자되는 명작이에요. 차후에 이영화의 감독이었던 시드니 루멧이 연출한 <핵전략사령부>에서도 좋은 연기력을 보여주었어요. 영화 자체도 자신의 정치적 성향에 잘 부합하기도 했어요. 선량하고 정직한 이미지의 그가 스파게티 웨스턴 장르인 무법자 시리즈로 유명해진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옛날 옛적 서부에서>에서 유일하게 약력으로 출연했는데요. 그 결과 당초 배급을 맡은 MGM 영화사가 배급을 취소할 지경에 이르죠. 미국인 관객들 역시 그의 악역 변신에 경악을 금치 못했고요. 이 작품에서 그가 맡은 악역 묘사가 어느 정도였냐면 한 가족을 몰살시키고 남은 어린아이마저도 자신의 이름을 알았다고 쏴 죽이고, 젊은 시절엔 재미 삼아 사람을 죽이기까지 했는데 그냥 총으로 쏘아서 죽이는 게 아닌 매우 잔혹한 방법으로 죽였다고 해요. 앞에서 말했듯이 그는 정직하고 정의롭고 선한 이미지의 미국인을, 미국을 대표하는 배우였기 때문에 그가 악역을 하는 것은 미국의 이미지에도 치명적인 묘사였기 때문에 당초 배급을 맡기로 한 영화사는 미국에 개봉될 경우의 파장을 두려워하며 배급을 취소해 버렸어요. 하지만 폰다는 악역을 연기하는 것이 마음에 들어 즐겼다고 해요. 10여 년 동안 영화, TV, 연극 무대에서 그다지 주목받지 못한 역할에 연이어 출연했어요.
그가 맡았던 마지막 큰 배역은 전설적인 여배우 캐서린 햅번과 그의 딸 제인 폰다가 함께 출연한 <황금 연못>의 주인공이었는데요. 이 영화는 의외의 흥행으로 거의 1억 2000만 달러의 수익을 거뒀고, 1982년 폰다에게는 유일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안겨주었으며,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가장 고령의 배우였어요. 그의 딸 제인은 1982년 <황금 연못>으로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른 유일한 부녀예요. 그는 그해 말 사망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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