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프리 보가트는 1899년 생으로 맨해튼 어퍼웨스트사이드의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났는데요. 그의 7대조 할머니인 사라 라펠리에는 뉴욕주에서 태어난 최초의 백인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해요. 그만큼 뉴욕 자체가 그의 가문과 역사를 함께하고 있는 셈이었으며, 실제로 당시 뉴욕 지역의 식민지 개척사를 보면 보가트라는 이름이 자주 등장해요.
1940년대와 1950년대의 전형적인 할리우드 터프가이가 된 인물이자 냉전 시대에 미국 영화계에 불어닥친 매카시즘 열풍에 적극적으로 반항하던 배우 중 하나였다고 해요. 뉴욕출신인 그는 원래 배우를 꿈꾸던 사람은 아니었다고 해요. 이런저런 다양한 직업을 거친 뒤 1921년에 본격적으로 연기를 시작했다고 해요. <카사블랑카>의 릭 블레인을 비롯해 기억에 남는 은막의 캐릭터들을 연기해 보가트는 전 세계적인 아이콘이 된 일련의 고전 영화에 출연해 끝없이 기억에 남을 명대사들을 전달했어요.
보가트는 1920년대에 무대에서 로맨틱한 주인공을 연기하며 배우 생활을 시작했고 1930년대 초반까지 브로드웨이에서 일하면서 연기생활을 이어 나갔으나 검은 목요일, 사건으로 인해 연극 생활에 문제가 발생하자 그는 할리우드로 진출해요. 그는 로버트 셔우드의 1935년 연극 <화석의 숲>에서 갱스터 듀크 만티를 연기하면서 유명세를 탔는데, 이것은 그해 브로드웨이에서 대성공을 거뒀어요. 보가트는 1936년 동명 영화에서 같은 역을 맡았고, 이후 저예산 B급 영화들 속 악당을 연기하게 되었어요. 이후 <더럽혀진 얼굴의 천사> 같은 갱스터 영화에 주로 출연했어요.
냉정하고 날카로운 눈매와 턱선, 깡마른 체구등이 탐정 역할에 제격이었는지 그는 라울 월쉬 감독의 <하이 시에라>에서 복잡한 안티히어로 로이 얼을 연기하면서 얻게 되었어요. 그해 후반 존 휴스턴 감독의 <몰타의 매>에서 보가트는 고집 센 형사 샘 스페이드를 연기하며 할리우드 스타 반열에 올랐고, 그의 연기 활동을 정의하는 스크린 속 신랄한 모습을 다지게 돼요. 1942년 그는 그의 가장 유명한 영화인 마이클 커티즈 감독의 <사카블랑카>에 출연했어요. 살롱 관리자 릭 블레인으로 분한 보가트는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를". "우리에게는 파리에서의 추억이 있어요.", "루이스, 이것이 멋진 우정의 시작일 것 같군."같은 명대사를 말했어요. 영화에서 그는 터프하고 비꼬는 말투를 가진, 진정으로 로맨틱한 외톨이의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했어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한 1944년 영화 <소유와 무소유>에 출연한 그의 상대 배우는 19세의 신인 여배우 로런 버콜이었어요. 그들은 1945년 결혼했는데 당시 45세의 보가트는 이미 3번 결혼한 전력이 있었죠. 그들은 역대 최고의 탐정영화인 하워드 호크스 감독의 <명탐정 필립>에 동반 출연했어요.
이후 그가 출연한 주요 영화로 <시에라 마드레의 보석>, <고독한 영혼>, 유일하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던 <아프리카의 여왕>과 <케인호의 반란> 그리고 마지막 영화 <하더 데이 폴>이 있어요. 험프리 보가트 하면 떠오르는 것은 바로 담배예요. 지금이야 담배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고, 방송에서 흡연 장면을 모자이크 처리하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당시 보가트가 출연하는 영화에서 멋들어지게 담배를 태우는 모습으로 흡연의 아이콘이 되었고, 뭇 남성들의 로망이었다고 해요. 오죽하면 이지라이더 삽입곡 중에 Don't Bogart That Joint (보가트처럼 대마초 피우지 마)라는 곡이 있는데 여기서 보가트는 독차지하다는 뜻의 동사로 쓰인다고 해요. 담배를 가장 멋지게 피우는 배우를 뽑으면 부동의 1위이기도 했다고 해요. 하지만 그 결과 그는 1956년 과도한 흡연으로 인해 후두암이 발병하면서 수술을 받았지만 병이 깊어져갔어요. 결국 1년도 못가 1957년 1월 14일 만 57세의 나이에 식도암으로 사망했어요. 사망 당시 몸무게가 40kg도 되지 않을 정도로 병색이 깊었다고 해요. 죽기 하루 전, 캐서린 헵번과 스펜서 트레이시가 마지막으로 병문안을 왔고 보가트도 이제 죽을 몸임을 알아서인지 덤덤하게 이 둘을 맞이했다고 해요.
험프리 보가트는 1930년부터 1956년까지 76편의 영화에 출연했어요. 1999년 미국영화연구소는 보가트를 20세기 최고의 전설적인 남자 배우로 선정했고, <엔터테인먼트위클리>는 1993년 그를 역대 최고의 전설적인 영화배우로 뽑았을 만큼 큰 인기와 영화사에 인상적인 업적을 남긴 배우예요. 특히 필름 누아르에서 큰 활약을 펼쳤고 해당 장르를 개척한 배우로서 필름 누아르의 대표 격으로 평가받는 배우이죠. 미국에서는 Badass의 상징적 존재이자 사실상 영화 연기 내에서 쿨한 터프가이, 입체화된 하드보일드 캐릭터를 처음 선보인 배우이고요. 보가트 이전의 주연급 배우들이 주로 전형적인 착한 주인공이나 코미디 캐릭터들에 불과했다는 것만 봐도 영화연기에 있어서 한 획을 그은 인물이 험프리 보가트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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